어쩔 수 없이 집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요즘, 나의 극복법
여행을 가고 싶은데 갈 수 없을 때 나는 여행 책을 읽는다.
여행 간 기분을 간접 경험하기 위해서다. 글이 아니더라도 여행을 가지 못하는 마음을 해소할 수 있는 여행 사진과 영상 같은 시청각적 자료는 넘쳐나지만, 혹시 내가 훗날 그 여행지를 가게 될 수도 있으니 감동을 해치지 않을 수 있고 머리 속으로 무한 상상을 할 수 있는 텍스트가 훨씬 내 취향이다.
이전에 여행 책을 빌릴려고 도서관을 간 적이있다. 수많은 여행 책들 중에서 나는 어느 곳으로 여행을 가볼까 살펴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책을 한 권도 고를 수가 없었다. 도서관에 있었던 책들은 대부분 해당 여행지의 명소에 대한 설명, 꼭 맛봐야할 음식 등과 함께 책이 출판되었을 때 유행하던 여행 스타일을 담아 혼자 여행하는 방법, 배낭 여행하는 방법, 워킹홀리데이로 여행하는 방법 등등 여행을 '잘' 할 수 있는 팁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정보를 주는 책들이 수요가 높고, 실제로 내가 어떤 여행을 계획한다면 이 책들은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책은 내가 마치 여행을 간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었다. 작가의 감상과 느낌이 듬뿍 담긴 책을 원했다. 내가 가고 싶은 여행지가 아니었더라도 책을 읽으면서 간접 여행을 하고, 그 곳이 가고 싶게끔 만들어주는 책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 책을 찾는 것은 참 쉽지가 않다. 앞서말한 것처럼 그런 책들은 일단 제목에 '여행'이라는 말을 잘 넣지 않기 때문에 검색해서 찾기가 어렵다^^; 주변에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도 없을 뿐더러 있다하더라도 나랑 같은 취향의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추천해달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더하여 나도 내가 어떤 곳을 가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다.
최근에 반갑게도 시칠리아 섬을 여행한 김영하 작가의 산문 '오래 준비해온 대답'이 발간이 되었다. 원래는 절판된 책이었는데, 독자들의 요청으로 개정판으로 출판된 책이었다. 나는 코로나 때문에 올해 계획했던 해외 여행을 하지 못해서 아쉬웠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충동적으로(?) 그 책을 구매했다. 시칠리아 섬이 어떤 곳인지도 몰랐지만, 그곳이 어디든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오래 준비해온 대답¹
김영하 작가는 한 곳에서 오랫동안 사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다고 할 정도로 여러 곳을 여행하고 국내외 할 것없이 여러 도시에서 정착하며 살았다. 그의 정돈된 필체를 통해서 시칠리아 섬을 여행한 것은 앞서 말한 나의 마음을 채우기에 딱 좋았다. 작가만의 감상, 작가가 직접 경험해야만 느낄 수 있는 감정, 느낌 등이 글로 온전히 녹아있었다.
책 속은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 여행한 시기라 종이 지도를 보거나 전화로 예약을 해야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시행착오 중 시칠리아 섬에서의 최악의 교통 시스템에 대한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기차역에서 몇일 동안 출발하지 못하고 왜 기차를 탈 수 없는지에 대해서도 역무원에 들을 수 없고, 말이 통하지도 않아서 답답함을 호소하던 그떄 그당시를 나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에피소드다. 그때 당시에는 힘들고 화가 나겠지만, 사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좋았던 것보다는 안 좋았던 순간이다. 한 챕터가 그와 관련된 이야기였고, 도시와 도시를 넘나들 때, 시칠리아섬에서 나오는 그 순간까지도 불편한 교통 수단으로 고생한 이야기는 원치 않은 일이라도 간접 경험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웃긴 건, 여행지를 다녀오고 나서 항상 좋았던 것보다 안 좋았던 것들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추억으로 기억하게 된다. 그렇게 힘들었던 순간을 잘 극복한 내 자신이 기특해서일까.
나는 비록 글이었지만, 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 덕분에 일반적인 여행책에서 매뉴얼처럼 적혀있는 통상적인 여행이 아닌 아무런 정보 없이 자유롭게 온전히 나의 여행을 한 것 같았다.
위에 쓴글만 보면 내가 굉장한 여행 광인줄 알겠지만 나는 움직이는 것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며 여행이 오히려 하나의 '일'처럼 느끼는 사람이다. 계획을 짜고, 짐을 싸고, 비행기 시간과 숙소 예약을 계속 체크하고... 여행은 좋지만 여행을 하기 위한 준비로 벌써 체력 소모가 크다. 여행을 다녀오고서도 마찬가지다. 짐을 정리하고, 집이 최고다라며 소파에 드러눕는다. 이렇게 여행과 거리가 먼 내가 이렇게 여행을 가고 싶어서 책이라도 읽어 해소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행의 이유²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라는 책이 있다. 책 제목 그대로 여행의 이유에 대한 김영하 작가의 경험과 생각을 적은 산문이다. 여러 챕터(이유) 중, 낯선 곳에 스스로를 일부로 빠뜨리고 그 곳에 잘 도착했을 때의 안도감을 느끼기 위해서 여행을 한다라는 이유가 가장 공감이 많이 되었다. 나는 내가 (생애 딱 두 번 있었던 해외 여행 중) 이탈리아 여행을 했을 때 크고 작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나도 몰랐던 기지들을 발휘했을 때 기쁨을 느낀적이 있었다. 특히 한국에서 쓸 일이 전혀 없었던 주입식으로 배운 영어를 드디어 써봤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음식을 주문하고, 길을 묻고, 아무 도움없이 택스리펀까지 받았다. 뛰어난 실력은 아니지만 필요한 때에 따라 적절히 사용하니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그 경험 하나로 이탈리아에 일주일도 있지 않았지만 몇 년 살다온 사람이 된 마냥 이탈리아 여행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처럼 떠들어댔다. 나는 내가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급하니까 살아남아야 하니까(?) 영어를 쓰는 나라도 아닌 곳에서 자연스럽게 영어부터 내뱉는 내 모습이 어쩌면 멋있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여행이란, 이렇게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고 싶어서일까.
그래서 단순 정보 전달을 위해서 적혀있는 여행 책들보다, 만약 내가 그 여행의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상상할 수 있는 여행 책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지금은 그렇다.
또다른 나의 모습을 꺼내어줄 수 있는 책이 있다면 얼마든지 여행하겠다. 당분간은 말이다.
이 글과 함께 한 책들
¹ 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 / 복복서가 / 2020
² 여행의 이유 / 김영하 / 문학동네 / 2019
by. liis (life is like 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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